우선 <전제가 잘못되었는데 결과는 맞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이 글을 읽으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논리는 학문의 세계에서는 인정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사주명리학이 <학>이라는 이름을 얻으려 한다면 이런 입장을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의 비판은 어디까지나 사주명리학이 운명분석과 예측의 근거로 삼고 있는 간지기시법이 그러한 용도로 사용이 가능한 기시법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있습니다. 즉 <과학적 용도>로 사용이 가능한 기시법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간지기시법으로 표현되는 8 가지 부호, 즉 年干, 年支; 月干, 月支; 日干, 日支; 時干, 時支 중에서 月支와 時支 이외의 6 가지 부호는 과학적 용도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하나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대 동양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간을 말해왔습니다. 인간들이 시간을 나타내는 단위는 아마 동서양을 막론하고 年, 月, 日, 時라는 4 개의 단위일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을 나타내는 단위는 <반복되는 어떤 현상에 근거>해서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인간들이 하는 반복되는 행위(사회현상)를 근거로 만들어지기도 하며, 자연계에 존재하는 반복되는 현상(자연현상)을 근거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 새로운 왕조의 출현, 왕실의 제사, 곡식의 파종과 수확, 식사를 하는 행위 등등의 인간사회의 반복적인 행위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 태양의 일주운동과 연주운동, 별들의 일주운동, 달의 이동, 행성의 이동 등등의 자연계의 반복적인 운동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인류문명 초기에 전자의 경우들이 종종 사용되었으나, 과학적 지식이 축적되면서 후자의 경우가 더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곡식의 파종과 수확, 식사 등의 행위는 후자의 시간에 종속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왕의 즉위에 근거한 즉위기년법이나 성인의 탄생에 근거한 서기, 불기 등의 기년법 같은 전자의 경우가 현재까지도 사용되지만, 이런 것들 이외의 반복적인 사회현상에 근거한 기시법들은 후자의 시간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이런 두가지 시간 중에서 사회현상에 근거한 시간의 주기는 과학적 용도로 사용될 수 없음은 너무 당연할 것입니다. 과학적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자연현상에 근거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과거 동양에서 만들어진 여러 가지 기시법 중에서 자연현상에 근거한 기시법이 바로 간지기시법입니다. 즉 간지기년법, 간지기월법, 간지기일법, 간지기시법입니다.
사주명리학을 하는 분들도 이 점에서는 동의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분들은 사주명리학이 운명예측의 전제로 삼는 간지기시법이야말로 <만고불변의 자연현상의 규칙적 변화를 말해주는 과학적 시간>이라고 생각하리라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주명리학이 설득력을 얻을 수 없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그분들이 항상 사주명리학을 이야기할 때 태양의 운행을 이야기하고 행성의 운행을 이야기하고 하는 것이지요. 사주명리학을 만든 서자평이란 인물도 연월일시의 간지기시법이 바로 이러한 자연현상에 근거한 과학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비단 이것은 서자평 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현재까지도 동양사회에서 믿어지고 있는 하나의 神話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주명리학을 믿던 안믿던 간에 동양인들의 머릿속에는 막연하게나마 4 가지 간지기시법이 자연의 규칙적 변화를 말해주는 과학적 시간이라는 믿음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누구도 사주를 보려하지 않을테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4 가지 간지기시법이 어떤 현상을 보고 만든 것인지가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뭔가 지금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떤 분명한 근거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명백히 부정되기 전까지는 일단 믿고 보자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4 가지 간지기시법이 각각 어떤 자연현상을 근거로 하여 만들어졌는지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우선 분명하게 그 해당되는 자연현상을 지적할 수 있는 기시법이 있는데, 바로 月支와 時支입니다. 月支는 1 태양년이라는 주기를 12 토막으로 나눈 것입니다. 즉 태양이 천구상을 1 회전하여 동일한 위치에 도달하는 하나의 주기를 12 부분으로 나눈 것입니다. 사주명리학에서는 입춘을 그 기점으로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月支라고 해서 달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의 月은 태음력이 아니라 태양력입니다. 또한 태양력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이 아니라 24 절기에 근거한 절기력입니다. 참고로 절기력이야말로 현재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우수한 태양력입니다. 그래서 사주명리학자가 만세력에서 월지를 따질 때 음력월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절기를 기준으로 다시 따지는 것입니다.) 時支는 1 태양일이라는 주기를 12 토막으로 나눈 것입니다. 즉 태양이 지구를 1 회전하여 동일한 위치에 도달하는 하나의 주기를 12 부분으로 나눈 것입니다. 태양이 午方에 있을 때가 午時가 되는 지극히 합리적인 기시법입니다. 이 두가지 기시법은 현대 천문학의 입장에 보아도 정확한 천문현상에 근거한 매우 합리적인 기시법입니다. 따라서 마땅히 과학적 용도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위의 두가지 기시법을 제외하면 모두 6 가지의 기시법이 남습니다. 月과 時에서 남은 月干과 時干, 그리고 年단위에서의 年干과 年支, 日단위에서의 日干과 日支가그것입니다. 이중에서 분명하게 그 근거가 밝혀진 자연현상은 年支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이것, 즉 12 支기년법은 목성이 천구상에서 대략 12 년을 주기로 일주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근거로 紀年하기 시작한데서 출발했습니다. 이것을 <세성기년법>이라 부릅니다.(대략 춘추시대 BC 771-473 년) 그후 목성의 운행에 근거하기는 하되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목성과 반대방향으로 운행하는 가상의 목성인 <태세(太歲)>라는 존재를 상정하여 <태세기년법>을 만들어 사용합니다.(대략 전국시대 BC 473-221 년) 그런데 漢나라때(BC206-AD220) 접어들어 천문관측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결국 유흠(劉歆. 중국 역법의 모델이 된 삼통력을 만든 인물)이란 인물에 의해 목성의 일주주기가 11.86 년이라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따라서 목성이나 태세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12 년 주기의 기년법이 성립될 수 없음을 깨닫게됩니다. 수 백년간 지속되어온 믿음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 동안 사용하던 과학적 시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 태세기년법을 버리고 대안으로 <간지기년법>을 만들게 됩니다. 이와같이 한나라사람들이 태세기년법을 간지기년법으로 전환한 이유는 자연현상에 부합되는 기년법으로 알았던 태세기년법이 더 이상 자연현상에 근거한 기년법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한나라사람들이 성취한 위대한 과학적 업적입니다. (참고; "세성의 정확한 주기가 12 년에 못 미치는 11.86 년이기 때문에 82 년에 1 개 星次의 오차가 발생하는 것이 超辰인데, 이로 인해 세성기년법으로는 실제 天像을 정확히 반영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後漢代 간지기년법이 등장하여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했던 것이다." - 王力, 「중국고대적역법」, 『왕력전집』제 20 권, 산동교육출판사, 1991. p.476. 최진묵의 「춘추의 시간서술과 한대 춘추해석법의 변화」『고대중국의 이해 3』p.256.에서 재인용) 이와같이 年支라는 것이 나오게 된 과정은, 처음엔 자연현상에 근거한 과학적 진리인 것으로 알고 그에 근거하여 기년법을 만들었는데, 기술의 발전으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단지 하나의 인위적인 주기로 바꾸기 위해 등장한 기년법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당시 사람들, 특히 참위계열의 학자들은 이런 변화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복잡한 이름의 태세기년법이 간편한 간지기년법으로 바뀐 것으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물론 사주명리학을 만든 서자평 역시 그렇게 이해했던 것이구요. 만일 간지기년법이 현재 동양학계의 정설인 위와 같은 목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태세기년법을 단순하게 부르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 할지라도 12 지기년법이 과학적 시간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목성의 주기가 12 년이 아니라 11.86 년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 이미 과학적 시간으로서의 의미는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목성과 태세의 끈이 끊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목성과 태세 사이의 끈이 끊어졌다는 것은 자연현상과의 끈이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月支와 時支는 태양의 운행이라는 자연현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시법이었고, 年支는 최초에는 목성의 운행이라는 자연현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시법이었으나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연현상에 부합되지 않음을 알고 그러한 성격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시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최소한 8 가지 중에서 하나의 기시법, 즉 年支는 전혀 과학적 용도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임이 증명됩니다. 이제 5 개가 남았습니다. 년간; 월간; 일간, 일지; 시간
다음으로는 日干과 日支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日干은 10 일을 주기로 하는 어떤 현상을 보고 만든 주기이고, 日支는 12 일을 주기로 하는 어떤 현상을 보고 만든 주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모든 紀時法은, 그 현상이 무엇이냐를 막론하고 <어떤 현상>이 없다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어떤 현상이 없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기시법을 사용하도록 설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간지기일법, 즉 10 간기일법과 12 지기일법은 분명히 어떤 반복되는 현상을 기록한 기시법이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그 현상이 무엇이었을까가 한참 동안 풀리지 않는 고민이었습니다. 즉 十干의 기원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소개된 여러 이야기들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간지기일법을 사람들이 사용하게 된 시점이 최소한 商(殷)나라때(BC 1551?-1066) 이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나라는 周나라 이전이고 적어도 지금부터 3,000 년전입니다. 4 가지 간지기시법들은 역사에 등장한 시기가 서로 다른데, 간지기일법은 대략 3,000-3,500 년전인 상나라때 출현했고, 나머지 세가지인 간지기년법, 간지기월법, 간지기시법은 모두 그로부터 1,000-1,500년 이상 후인 한나라때 출현했습니다. 엄청난 시간차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간지기일법의 출현배경과 나머지 세가지 기시법의 출현배경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나라때 출현한 간지기일법에는 당연히 주나라 후기인 춘추전국시대 이후에 형성된 음양오행개념이 들어있을 리가 없는 것이지요. 이런 내용들은 이미 주지의 사실입니다. 따라서 천간지지를 이야기하면서 음양오행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한나라때 만들어진 세가지 기시법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됩니다. 다시 말해 상나라때 만들어진 간지기일법을 이야기하면서, 한나라때 완성된 논리인 음양오행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선시대사람들이 컴퓨터를 사용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렇다면 상나라때 사람들은 日을 제외한 年, 月, 時는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가? 자료를 찾아보니 갑골문이 풍부하게 남아있는 후기의 상나라시대의 기록을 보면 年은 왕실의 제사가 반복되는 현상에 근거하여 惟王幾祠기년법이라는 방법을 사용했고, 月은 序數인 1, 2, 3,....12 또는 13 월 방식을 사용했고, 時는 엄밀하게 等分으로 나뉘는 방법이 아니라 대략 7 가지 용어들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干支로 시간을 따지는 방법은 철저히 날짜에만 국한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3,000-3,500 년 이전의 옛날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고도의 청동기 문화를 꽃피웠던 당시 인간들이 우리와 비교해서 그렇게 머리가 모자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날짜를 세는 단위로 사용한 10 干기일법과 12 支기일법은 도대체 어떤 현상에 근거해서 만든 것일까가 한참동안 풀리지 않는 숙제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고대 중국에 있었던 <十日神話> 즉 열 개의 태양 신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을 보는 순간 아!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십일신화는 지금이야 신화라고 부르지만 사실 商나라때 사람들이 생각했던 우주관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실제로 태양이 열 개라고 믿었던 것이지요. 십일신화에 대해서는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하늘의 제왕인 제준의 아들들인 10 개의 태양이 동쪽에 거대한 부상이라는 나무에 사는데, 하루에 한 분씩 하늘에 올라왔다가 다시 들어가고를 순서대로 반복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태양들이 어느날 동시에 하늘로 떠올라 뜨거운 열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온갖 생물이 고통을 당하자 제준이 뛰어난 활잡이인 예를 불러 9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다는 내용입니다. 중국사 책들을 뒤져보니 이러한 신화가 실제로 당시인들의 믿음체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관련내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 <은나라 사람들은 10 개의 태양이 땅속에 있다가, 매일 하나씩 교대로 천상에 나타난다고 믿었기 때문에, 열흘 간격으로, 또 다음 태양이 떠오르는 밤마다 일상적으로 점을 쳤다. 그 열 개의 태양의 이름이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즉 십간이다. 그들은 절대신인 상제로부터 10 개의 태양신, 각종 자연신을 숭배했으며, 조상들이 이들에게 자신들의 간절한 바람을 전해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조상숭배를 각별히 했다. 제사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왕의 가장 중요한 업무의 하나였다.>>(안정애, 양정현, 『중국사 100 장면』 가람기획, 34 쪽.) <<은에서는 태양을 믿었다. 그들은 땅속에 10 개의 태양이 있어서 매일 교대로 모습을 드러내며 열흘이면 한 바퀴(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를 돈다고 굳게 믿었다. 왕이 죽으면 그 태양들의 이름 중 하나가 부여되어 신들의 일원이 되었다. 태양이 한 바퀴 도는 10 일은 순이라고 하며 새로운 순을 맞이하기 전에 그 재앙을 점치는 卜旬이 이루어졌다. 도한 그들은 태양이 지고 난 후의 어둠을 두려워하여 밤마다 재앙을 점치는 卜夕도 되풀이했다.>>(미야자키 마사카츠, 『하룻밤에 읽는 중국사』 28 쪽.) 그들이 어떻게 해서 이러한 믿음체계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믿음을 가졌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참 황당한 믿음으로 보이지만, 종교적 믿음이란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렇게 믿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상나라 문화의 특징 중의 하나가 <占卜문화>인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던지 항상 점을 쳐보며 살았던 인간들이 상나라 사람들이었던 같습니다. 말기로 갈수록 이런 경향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상나라 시대가 엄청난 종교적 도그마에 짓눌렸있던 시대였던 것만은 분명한 듯 싶습니다. 그러한 문화속에서의 십일신화를 생각해볼 때 10 개의 태양들은 엄청난 권력을 가진 神的인 존재였을 것입니다. 비록 태양이 하나라고 생각하던 고대 문명들에서의 태양신의 권위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권위는 결코 작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개개의 태양들에 이름이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1 번 태양, 2 번 태양 하는 식으로 말했을리는 절대 없었을 것입니다. 각각의 태양들이 이름을 가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10 개의 태양이 있는 것처럼 지상에도 태양에 버금가는 존재들이 있는데, 그들이 곧 상나라의 왕들입니다. 비록 통치하는 왕은 한 명이지만 먼저 죽은 선대의 왕들도 거의 왕처럼 모셔졌습니다. 1 년을 세는 단위를 왕의 제사주기로 한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왕들의 제사를 중시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고대 어느 문명이나 그렇지만 상나라의 왕들은 자신들의 왕권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고, 그 때문에 왕들의 이름에는 태양의 이름들이 붙게 됩니다. 역대 상나라 왕들의 이름에 하나도 빠짐없이 十干의 명칭이 붙어있는 것을 눈여겨 봐야 것입니다. 따라서 10 干기일법은 바로 10 개의 태양들께서 올라오시는 순서였던 것입니다. 甲이라는 맏형님 태양이 올라오시는 날이 바로 甲日인 것입니다. 둘째 형님인 乙께서 올라오시는 날이 乙日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맨 막내인 癸께서 올라왔다 내려가시면 다시 甲께서 올라오시는 순서로 반복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명백한 믿음체계가 없었다면 10 간기일법은 나올 수 없는 방식입니다. 자연계에 10 일을 주기로 반복되는 현상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체계에 대해 도전한다는 것은 곧 상나라 왕실에 도전한다는 것이 됩니다. 旬葬까지도 대규모로 행해지던 당시 사회에서 이런 믿음체계에 대한 회의는 꿈에도 꿀 수 없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하여튼 이러한 믿음체계는 어떤 과정인지 몰라도 붕괴되었습니다. 신화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예가 등장하여 9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는 내용은 10 개의 태양에 대한 믿음체계가 하나의 태양 체계로 바뀌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수백년(수천년?)간 지속되어온 그러한 믿음에 근거한 인간들의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10 개의 태양신화가 무너졌다고 해서 10 개의 태양에 근거해서 날짜를 세오던 수백년간의 방식을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결국 날짜를 세는 방식은 그대로 계속 굴러갔을 것입니다. 또한 10 개의 태양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과 문화도 상당기간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절대神과 비슷했을 태양들의 이름이 우주관이 바뀌었다고 해서 쉽게 사라진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무려 1,000 여년이 지난 후의 사람들인 한나라 사람의 무덤인 마왕퇴 유물에도 9 개의 태양(10 개가 아닌 이유가 궁금)이 그려져있는 것으로 볼 때 문화라는 것의 뿌리깊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10 干의 기원이 10 개의 태양이라는 결론을 말하는 학자들은 적지 않은데, 지난 여름 상당히 구체적인 논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 종교학과 박사학위 논문인데 제목은 『상대 시간관의 종교적 함의: 갑골문에 나타난 기시법과 조상계보 및 오종제사를 중심으로』(임현수, 2002.)입니다. 이 논문의 관련부분을 일부 옮겨보겠습니다. <<인용부분>> << 본고는 십일신화가 상대 신화라는 전제를 하나의 가설로서 받아들이고, 여기에 기초하여 商代 廟號에 干名이 포함된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먼저 다음의 언급을 통하여 10 개의 태양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고대 중국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남아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儒者 및 장인들은 모두 태양이 하나라고 말한다. 禹와 益은 『산해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태양은 열 개가 있다. 海外의 동쪽에는 湯谷이 있는데, 위로 扶桑 나무가 뻗어 있다. 열 개의 해가 목욕하는 물 속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아홉 개의 해는 나무 아래가지에 머물고, 나머지 한 개의 해는 나무 윗가지에 머물렀다." 또 『회남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열 개의 해가 비쳤다. 堯 시대에 열 개의 해가 동시에 나와서 만물이 말라죽자 堯가 열 개의 해를 화살로 쏘았다." 그렇게 해서 10 개의 해가 동시에 출현하는 현상은 없어지고, 하나의 해만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세간에서는 말하기를 甲乙로서 해의 이름을 붙였는데, 甲에서 癸까지 모두 열 개의 해가 있다고 하고, 해가 열 개 있다는 것은 별이 다섯 개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박학한 학자나 말 잘하는 사람들은 알기 어렵다고 하며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두 가지 주장이 전해지고 있지만 이 중 정해진 것은 없다. 세간의 두 주장 가운데 主가 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열 개의 해는 없다.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위의 기록은 漢代에 활동했던 王充의 발언이다. 이 글에서 왕충과 다른 儒者들 혹은 각종 장인들은 태양이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항간에서는 태양이 10 개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王充은 이 점을 비판한다. 태양이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열 개로 착각하는 세상 사람들의 무지와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판단을 유보하는 학자들의 무책임을 비판한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商代로부터 훨씬 떨어진 漢代 당시에도 태양이 한 개인가 열 개인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10 태양설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태양은 하나라는 사실이 지배적인 담론으로 굳혀져 가고 있었던 시대에 아직도 태양은 열 개라고 주장하는 담론이 세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는 현실은 후자의 전통이 고대 중국에서 얼마나 뿌리깊은 것이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 (115-116 쪽.) 한 부분을 더 인용하겠습니다. << 약간 모호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상대 당시의 정황은 충분히 10 개의 태양에 각기 다른 이름을 부여하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갑골문의 '日' 字는 '태양'과 '날'을 동시에 의미할 뿐만 아니라, '日', 즉 태양은 의례의 대상이기도 하였다는 점에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甲日과 乙日은 특정한 날을지칭하는 것이지만, 갑이라는 태양, 을이라는 태양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날짜로서의 甲日'이란 결국 '태양으로서의 甲日이 출현한 날' 혹은 '태양으로서의 갑일이 지배하는 날'이란 의미를 지니게 된다. 키틀리가 지적한 것처럼 商代에 '각각의 날들은 특별한 태양의 힘에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甲·乙로 시작되는 十干은 날짜이기 이전에 10 개의 태양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상대 조상 廟號에 포함된 十干 역시 祭日을 가리키는 날짜 개념임에는 틀림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10 개의 태양 가운데 하나를 지칭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廟號에 태양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조상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는 현실이란 결국 조상과 태양의 관계가 그 만큼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120 쪽) 이와 같이 十干의 명칭의 기원은 10 개의 태양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봅니다. 이렇게 놓고 보았을 때 상대에 간지기일법이 사용된 이유가 자연스럽게 설명되고, 날짜를 말하는 日과 태양을 말하는 日이 같은 이유가 풀립니다. 또한 商代 왕들의 이름에 十干이 사용된 이유를 비롯해서 여타 여러 가지 정황들이 자연스럽게 설명됩니다. 물론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확인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판단은 각자의 몫일 것입니다. 저는 99% 확신하는 입장입니다. 일간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길었습니다.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日支에 대해 말씀드리면, 12 支는 주지하다시피 10 干과 동시에 날짜를 세는 방식으로 쓰여졌습니다. 10 干과 시간적으로 동시에 사용되었습니다. 상대에 날짜를 말할 때 10 간이 주로 사용되었지만, 그것은 12 지를 생략한 것이지 12 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商代 문화를 생각해볼 때 10 간이 10 개의 태양을 말하는 것이라면, 12 지가 무엇을 의미할 것인지는 쉽게 추측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달입니다. 여러 책들에 동일한 내용이 나와있으니 더 자세한 설명은 안하겠습니다. 결국 간지기일법은 상나라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자연현상과 일치하는 매우 과학적인 기시법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간지기일법은 10 개의 해와 12 개의 달이 규칙적으로 떠오르는 과학적인 기시법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과학자라면 이에 근거하여 어떤 현상들을 설명하고 예측해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가 이것을 운명추론의 용도를 포함한 과학적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지는 각자 판단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주명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日干입니다. 어떤 사람이 태어난 날의 日干이 곧 그 사람이 가지는 자신의 기운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 날짜의 일간에 근거하여 그 사람이 어떤 오행을 타고났는지를 본 다음 나머지 7 字의 오행을 따져서 그것과의 상생상극을 논하는 것이 사주명리학의 기본 논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왜 사주명리학이 사이비이론이라 말하는지 충분히 짐작하실 것입니다. 4 가지 간지기시법 중에서 그 과학성이 가장 의심되는, 아니 명백히 의심되는 간지기일법을 운명추론의 시발점으로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과학적 용도로 사용이 가능한 月支나 時支에서 추론을 시작한다면 약간이나마 긍정적으로 보아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만에 하나 간지기일법이 10 태양신화에 근거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10 일이나 12 일처럼 정수로 딱딱 떨어지는 주기를 가지려면 그 현상은 고체와 관련된 현상이어야합니다. 액체나 기체 상태의 존재는 변수가 매우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정한 주기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러한 존재는 천체일 수밖에 없고 그러한 천체는 눈에 보일 수 밖에 없으며 그러한 천체와 관련된 천문현상(원운동 또는 회전운동) 역시 눈에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천체나 천문현상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입니다. 따라서 10 개의 태양이나 12 개의 달과 관련이 없다면 간지기일법은 더더욱 자연현상과는 관련없는 기시법이 됩니다. 4 가지 간지기시법이, 특히 간지기일법이 이렇게 허무한 믿음을 근거로하고 있다고 믿기 싫은 분들은 무언가 다른 현상, 고대인들은 보았지만 우리는 보지 못하고 있는 어떤 현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하나하나 추적하다보면 위와 같은 결론에 다다르리라 확신합니다. 나머지 언급하지 않은 年干, 月干, 時干은 사실 별로 언급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만들어만 놓았지 실제적으로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거의 사용되지 않은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月干과 時干은 당나라때 나왔다고 이야기하는 논문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간지기일법이 적어도 1,000 년이상 사용되고 난 후 한나라때 들어서서 드디어 나머지 세가지 간지기시법들이 등장합니다. 간지기년법이 먼저 등장하고 곧이어 간지기월법과 간지기시법이 등장합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고대의 간지기일법의 용어을 끌어다가 음양오행이론을 결합시킨 후 年과 月과 時에까지 확장을 시킨 것입니다. 결국 年, 月, 日, 時 모두에 간지를 이용하는 체계가 완성됩니다. 사실 상나라때 사람들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튼 이와 같이 4 개의 간지기시법은 서로 다른 우주관과 자연관에 근거한 별개의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은 시간의 순서를 나타내는 용도로는 쓰일 수 있어도 자연과학적 용도로는 바로 사용될 수 없는 요소들이 포함된 기시법 체계였습니다. 그러나 4 가지 간지기시법 속에 숨어있는 이러한 玉石을 구별하지 못한 많은 이론가들은 4 가지 모두가 우주자연의 변화를 말해주는 원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이에 근거한 많은 이론들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들 논리의 엄밀성에도 불구하고 전제가 된 간지기시법의 오류 때문에 결국 사이비이론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사주명리학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이론인 것입니다.
정리하면, 간지기시법은 4 가지 모두 천문현상을 이용하여 시간을 표시한 방법이었습니다. 간지기일법은 3 천년전 상나라 사람들이 천문현상을 이해한 방식에 근거하여 만든 방식이고, 나머지 간지기년법, 간지기월법, 간지기시법은 2 천년전 한나라 사람들이 천문현상을 이해한 방식에 근거해서 만든 방식입니다. 그들이 천문현상을 이해한 방식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시간의 순서>를 나타내는 용도로만 사용할 때는 어떤 방식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7 요일법도 10 태양설 만큼이나 황당한 과거 유럽의 우주관에 근거하는 방법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도 상나라때의 간지기일법을 비웃을 이유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목적 이외에 과학적 용도로 사용될 때는 그럴 만한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간지기시법은 적합하지 않은 기시법이라는 것입니다.
출처: 구글 검색, 저자: 남두성(2008.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