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시간과 과학 이야기
제10장 시간에 대한 두 가지 관점
# 이 장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시간 개념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동 · 서양 지식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것을 통해 동 · 서양 과학의 차이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사주팔자나 점성술 같은 사이비 과학이론들이 왜 그렇게 설득력 있게 들리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동 · 서양의 시계 문자판
동양과 서양의 시간 개념을 비교해보기로 하자. 동 · 서양의 시간 개념을 비교하기 위해 두 가지 시간을 동일한 조건으로 조정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두 가지를 조정해야 한다. 첫째, 하루를 나누는 '시간 단위'를 통일시켜야 한다. 이 문제는 24시간으로 통일시키기로 하자. ... 둘재, 시간을 부르는 명칭도 통일시켜야 한다. 이 문제는 '숫자'로 통일시키기로 하자. ... 그런 다음 동 · 서양의 시간을 비교해보자. [그림 : 동양의 숫자 시계, 서양의 숫자 시계] 보시다시피 동양의 '1시'는 서양의 '1시~2시'가 된다.
# 서양의 시간 개념에서 1시 10분과 1시 30분은 완전히 별개의 시간이다. 1시 10분과 1시 30분의 태양의 고도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의 시간에는 1시 10분과 1시 30분은 같은 시간, 즉 '축초시'다.
# 서양의 시간 개념
서양의 시간 개념은 시점 개념과 시간 개념으로 나눌 수 있다. ... "시의 개념에는 시각과 시간의 두 가지 면이 있다. 시의 경과를 하나의 직선이라고 보면 직선상의 점은 시각이 되고, 두 점 사이의 거리는 시간을 나타낸다.(『두산백과』 '시간' 항목)" ... " ... 시(時)란 운행하는 모든 과정 속의 '불연속점'을 말합니다. ... 시간은 이러한 불연속점을 이루는 시와 시의 사이를 뜻합니다.(『음양이 뭐지?』)"
# 동양의 시간 개념
위와 같이 서양의 시간 개념은 시점 개념과 시간 개념으로 나뉘어 있다. 그렇다면 동양의 시간 개념은 어떨까? 다시 동 · 서양이 시계 모양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 두 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시간을 가리키는 숫자가 씌여 있는 '위치'를 보자.
▶ 서양의 시계는 '시점' 위치에 적혀 있다.
▶ 동양의 시계는 '시점과 시점 사이'에 숫자가 적혀 있다.
필자는 이 차이가 매우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동양의 시계에서 시점과 시점의 사이에 시간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동양의 시간 개념이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하나의 시기'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하나의 기간을 '분기(分期)'라고 부르기로 하자. 동양 시간에서 시의 하부 단위인 '각(刻)'도 어김없이 두 시점의 사이에 표시된다. 즉 아무리 작은 시간의 단위도 "길이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역으로 동양 시간에서 길이가 없는 시간 개념은 상상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동양 공간에서 부피가 없는 점 개념을 상상할 수 없듯이 말이다. (주: 근대과학은 '점'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했다. ... "점이란 부분이 없는 것이다.(유클리드)", "점이란 위치가 있고 부분이 없는 것이다.(라이프니츠)" ... 같은 논리로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모든 경혈은 점처럼 표현되지만 부피가 있다. 마찬가지로 경락들도 선처럼 표현되지만 부피가 있다.) (우안: 동양인의 실제적인 사고, 단순한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시각은 점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실제론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상정을 하지 않은 것. 동양은 서양처럼 이데아의 개념이 없기 때문?)
# 분기개념에 대해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선 차원에서의 '분선', 면 차원에서의 '분면', 공간 차원에서의 '분구', 시간 차원에서의 '분기'가 같은 맥락이다. ... 동양의학의 경락체계는 흔히 8개의 분구로 나누어 설명하곤 하는데 ... 마주보는 분구는 생리학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 동 · 서양 시간개념의 차이
우리는 쉽게 생각하면 이 두 가지 방식의 시간개념이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느껴지기 쉽다. ... 서로 충돌이 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서양의 시간에서 23시부터 1시까지의 두 시간은 그냥 시간의 '양'으로서의 두 시간일 뿐이다. 즉 '23시부터 1시까지'의 두 시간이나 '11시부터 13시까지'의 두 시간이나 마찬가지 의미일 뿐이다. 그렇지만 같은 시간을 의미하는 동양의 시간인 '자시(子時)'로서의 두 시간과 '오시(午時)'로서의 두 시간은 매우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정리해보면 동양이나 서양이나 하루를 24개의 분기(分期, 토막)로 나눈 것은 같았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그 각각의 '분기'에 이름을 붙여서 시간을 말해왔다. 서양인들은 분기와 분기가 만나는 '분기점'에 이름을 붙여서 시간을 말해왔다. 아울러 동양인들은 그 각각의 분기점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또한 서양인들은 그 각각의 분기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분기와 분기가 바뀌는 그 분기점을 동양사람들은 어떻게 인식했을까? 여기에서 기가 막힌 개념이 나온다. 바로 '간시(間時)'라는 개념이다. '사이의 시기'라는 뜻이다. 서양의 시점개념에 익숙한 우리들은 "분기와 분기의 사이에는 시점이 있다"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옛 동양인들은 그러한 시점 개념을 상상할 수 없었고 대신에 간시라는 다른 방식으로 분기와 분기의 전환기를 표현했다. 그들이 시점이라는 개념과 얼마나 거리가 멀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개념이라 생각한다.
# 자시(子時)라고 하면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12시 단위로 말하면 23시부터 1시까지의 두 시간이 되고, 24시 단위로 말하면 23시 30분부터 0시 30분까지의 한 시간이 된다.
# 간시 개념을 정리하면 동양에서는 '정지 상태'를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점 개념'이 없었고 때문에 분기와 분기가 전환되는 시기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할 때는 또 다른 분기인 '간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동양에서 정지 상태를 상상할 수 없었던 이유는 동양 사상이 '우주 만물은 끊임없이 운동한다"는 항동관(恒動觀)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현대물리학의 한 축인 양자역학이 그러한 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면 이 우주 내의 어떤 것도 완전한 정지 상태에서 있을 수 없다. 모든 만물들은 항상 '양자적 요동상태'를 겪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떤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게 되고, 이는 하이젠베르크의 선언에 위배된다.(『엘러건트 유너버스』)" (우안: 그보단 실제하지 않는 것은 상정하지 않은 사고에 관계된 게 아닐까?)
# 흔히 동지와 하지 같은 24절기를 시점개념으로 파악한다. ... 24절기를 이와 같이 이해하는 이유는, 서양에도 동지와 하지가 있는데 그것이 시점 개념이기 때문에 둘을 같은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한 시점 개념으로 동양의 동지와 하지를 이해하기 때문에 24절기에 대한 오해가 발생한다. ... 그러나 24절기는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약 15일 가량의 시기, 즉 분기다. 하지는 낮이 가장 길어지는 시점이 아니라, 그 시점이 들어있는 특정 날짜이거나 그 날짜로부터 다음 절기의 입기일(入氣日)까지의 약 15일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24절기를 각각 3후씩 나누어 약 5일 단위의 72후를 만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절기의 정확한 의미, 즉 원래 의미는 "1년을 24개로 나눈 분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일상생활에서는 "그 절기가 시작되는 입기일"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동지가 시작되는 날을 동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특정 시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입기일이라고 해도 하루라는 날짜를 가지기 때문이다. 각과 분 단위까지 따지더라도 그것은 분기이지 시점이 아니다.
#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양의 시계문자판과 서양의 시계문자판은 다른 모양을 하고 있고, 그것은 두 문화가 가지고 있는 시간 개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동양과학에서는 동양의 시계 모양을 사용해왔고, 서양과학에서는 서양의 시계 모양을 사용해왔다. 그런데 서양과학이 들어오면서 동양과학의 그림들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즉 동양의 '분기'를 나타내는 용어들을 '시점'을 나타내는 요어들인 것처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 과학의 시간 개념의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 동양의 방위와 서양의 방위
동 · 서양 시간 개념의 차이는 동 · 서양 방위 개념의 차이와 연관되어 있다. ... 서양식 방위개념은 하나의 '점'을 가리킨다. 앞에서 서양의 시간상의 '점'을 가리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그럼 여기서 동양의 방위개념들을 살펴보자. 먼저 8방에 대한 『국어사전』의 설명을 찾아보자. ▶ 감방(坎方); 8방의 하나. 정북을 중심으로 45도 각도의 안의 범위. ... 여기서 특이한 표현은 '45도 각도의 안'이다. 즉 각도가 없이 방향만 나타내는 '방점'의 개념이 아니라 45도라는 각도가 있는 '분방'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동양의 시간개념이 '시점' 개념이 아니라 '분기' 개념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8방에서의 북방[坎方]은 정북이 아니라 정북을 중심으로 좌측 22.5도부터 우측 22.5도까지를 말한다. 동양의 24방 역시 마찬가지이다. ...
동양의 방위개념은 동양의 시간개념과 직결되어 있다. 동양의 시간개념이 방위개념과 사용하는 용어가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양의 시간에 '간시'가 있는 것은 동양의 방위에 '간방'이 있다는 말이다. ...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동양의 방위개념은 서양의 방점개념과는 다른 분방개념이다. 그것은 동양의 시간개념이 시점개념이 아니라 분기개념인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하나의 방위와 다른 방위가 겹치는 방위를 보다 정확히 가리키고자 할 때 간시처럼 간방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주: 이와 같은 사고과정은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네 가지 심상(心象)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네 개의 상은 두 개의 정상(正象)과 두 개의 간상(間象)이 결합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음상과 소양상을 '정상'이라고 하고, 태음상과 태양상을 '간상'이라고 한다면 이제마 선생의 업적은 간상이라는 시각을 개척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전의 동양의학은 정상의 시각에서 만든 의학인 것이고, 이제마의 의학은 정상과 간상을 모두 아우르는 시각에서 만든 의학인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전의 의학이 남쪽과 북쪽으로만 방위를 이야기했다면 이제마는 동쪽과 서쪽이라는 방위를 도입하여 네 개로 구분하여 방위를 말하는 것이다. ... 이제마의 사상은 '방위'가 아니라 '서로 마주보는 방위 사이의 기울기' 같은 것이다. 즉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기 쉽게 타고 났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 )
제11장 시간과 문화
1. 시간과 과학
# 지금까지 동 · 서양의 시간개념의 차이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을 해보았다. 그것은 '시점'과 '분기'의 차이다. 그리고 그것은 각각 '정지' 개념과 '변화' 개념으로 연결된다. ... 원 운동하는 물체를 시점 개념과 분기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서양의 시점 개념은 그 때(시점) 그 물체의 '위치'를 나타낼 것이고, 동양의 분기 개념은 그 때(분기) 그 물체의 '운동'을 나타낼 것이다. ... 서양과학(화학)은 각 '시점'의 사진을 찍어 그 '구조'를 연구한 다음, 각 시점의 '구조의 차이'를 가지고 자연현상을 설명한다. 동양과학은 각 '분기'의 '동영상'을 찍어 그 '변화'를 연구한 다음, 각 분기의 '변화의 차이'를 가지고 자연현상을 설명한다. 서양과학의 이러한 모습은 생화학 책에 잘 나타나 있고, 동양과학의 이러한 모습은 운기학 책에 잘 나타나 있다. ... 서양과학(물리학)은 기본적으로 그 '시점'의 '위치'를 파악한다. 즉 '정지 상태의 위치'를 파악한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좌표'를 사용한다. 좌란 '자리', 즉 위치라는 말이다. 동양과학은 기본적으로 그 '분기'의 '변화'를 파악한다. 즉 '운동상태의 변화'를 파악한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행표'를 사용한다. 행이란 '움직임', 즉 변화라는 말이다.
#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홀수인 5를 기반으로 한 오행론은 동양의학의 미신성의 원천이고, 짝수인 2-4-6을 기반으로 한 음양-사시-삼음삼양론은 동양의학의 과학성의 원천이다. 물론 이러한 이론들이 모두 과학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 동양의학은 5라는 숫자를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숫자'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나라 한의학계가 왜 중국의학계와 달리 아직까지도 오행론이 활개를 치는지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 이러한 시간개념의 차이는 동 · 서양 악보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서양의 악보는 5선으로 그려져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이다. 음표는 선 위에 점처럼 표현된다. 음표와 음표 사이에는 공간이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마치 음점들이 선이라는 1차원 공간 속에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이와는 달리 동양의 악보는 동양의 시계처럼 기본적으로 면으로 되어 있다. 음은 면의 전체, 즉 하나의 분기를 꽉 채우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음과 음 사이에는 공간이 없는 것처럼 그려진다.
# 서양과학은 '위치'를 말하기 때문에 '특정 사물'의 운동만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 동양과학은 '변화'를 말하기 때문에 '전체'의 움직임을 표현한다. 전체, 즉 특정 사물만이 아니라 나머지 공간의 변화까지 한꺼번에 말하고자 하므로 대개의 경우 표현이 구체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서양과학은 '운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지만, 동양과학은 '변화'에 대해서 '추상적'으로 말한다.
# 서양과학은 물체를 공간과 구분하여 말하지만, 동양과학은 물체와 공간의 구분 없이 하나의 덩어리로 파악한다.
# 이와 같은 차이점이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서양과학은 '본다'는 것에 과학의 기반을 두고 있지만, 동양과학은 '느낀다'(본다는 것 포함)는 것에 과학의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 서양과학은 나에게도 보이고 너에게도 보이고 제3자에게도 보이는 것, 즉 객관성(客觀性)이 있는 것만 과학의 대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동양과학은 나에게도 느껴지고 너에게도 느껴지고 제3자에게도 느껴지는 것, 즉 객감성(客感性)이 있으면 그것을 과학의 대상으로 인정했다.
# 지금까지 동양의학을 이끌어온 많은 의학자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능력을 가진 인간들이었지 특이한 능력을 갈고 닦았던 초능력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서양의학은 인체를 공간으로 보고 그 속에서 물체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이동하는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공간은 관찰수준에 따라 기관이나 조직이나 세포 중에서 선택된다. ... 동양의학은, 자연이 보이지 않는 하늘과 보이는 땅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인체 역시 보이지 않는 기분(氣分, 인체의 하늘)과 보이는 혈분(血分, 인체의 땅)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고 그것들의 상호관계를 연구했다. 또한 그것들과 외부자연의 하늘과 땅과의 상호관계를 연구했다.
# 형태적 변화가 동반되기 이전의 질병 상태, 즉 기분병의 경우는 서양의학이 잘 잡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병이 더 깊어져서 혈분병 단계로 접어들 때까지 기다리거나 한의원을 찾게 된다. ... 서양의학은 전 세계적인 엄청난 투자와 치열한 노력을 통해 끊임없이 혈분병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즉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다. 우리 한의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러한 노력은 모든 기분병을 혈분병으로 '환원'하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 "과학의 영역에서 실험에서 행해지는 모든 방법은 '환원론'이다. 과학에 다른 방법론은 없다. 따라서 생명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환원주의적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설사 우리가 과학적 행위를 위해서 환원론이라는 방법을 선택했지만, 이 방법만이 유일하게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 다행히도 현대물리학은 환원주의적 방법론의 한계를 알고 있다. ...... 그런데 생물학에서는 아직도 환원론의 방법을 맹종한다. ...... 그렇지만 생명이란 단지 부분적 구성 요소들만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부분들의 '연관관계'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오늘날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유전자 연구라는 환원적 방법론이 폭넓게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또 다른 교양』)
# 한의사인 필자도 서양의학은 우리나라의 기본의료체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양의학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생각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 의학은 응용과학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양한 기초과학의 도움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 서양의학의 훌륭한 진단 기기들은 의사들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서양의학의 연구 인력은 비단 기초의학자들 뿐이 아니다. 물리학자 · 화학자 · 생물학자뿐만 아니라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다양한 학자들 모두가 그드르이 지원세력이다. 그러나 한의학의 경우 그러한 기초과학을 연구해주는 지원 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 "양자역학이 불러일으킨 과학혁명은 진공을 완전히 텅 빈 상자로 보는 이전의 관념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새로운 관점에 따르면 진공이란 것은 상자 안에서 우리가 제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하고 난 뒤에 남은 상태를 뜻할 뿐이다. 그 상태는 결코 공허가 아니다. ...... 실제로 무엇인가가 항상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우주의 모든 구석에 스며 있는 진공에너지였다. 이 보편적이고 제거불가능한 진공에너지를 실제로 검출함으로써 진공이 '물리적 실체'로 본재함이 분명해졌다." (존 배로,『무 0 진공』)
# 서양과학은 근대과학 이후 20세기 현대물리학, 즉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하이벤베르크와 슈뢰딩거의 양자역학까지 모두 '점' 개념에 근거해서 자연현상을 설명해왔다.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점 개념에 근거하지 않는 새로운 설명체계가 모색되고 있다. 그것은 '끈'이라는 개념에 근거해서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인데, '끈이론' 또는 '초끈이론'이라고 부른다. ...
" ... '모든 물질과 힘의 물성은 단 하나의 근원, 즉 끈의 진동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 끈이론의 핵심이다. 모든 소립자들은 "진동하는 끈의 현현"이며, 모든 끈들은 완전하게 동일한 존재다. 입자들이 서로 다른 성질을 갖는 듯이 보이는 이유는 끈의 "진동패턴"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끈의 '음색'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그들이 서로 다른 입자로 보인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수없이 많은 끈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진동하고 있는 이 우주는, 하나의 웅장한 '우주교향곡'이 연주되고 있는 거대한 무대인 셈이다." (브라이언 그린, 『엘러건트 유니버스』)
# 시점개념과 분기개념은 장회익 교수가 말한 시간의 적재성과 공백성개념과 관련이 많다. 장회익 교수는 두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간을 균일한 빈 그릇과 같이 보는 관점을 시간에 대한 공백적 관점이라 부른다면, 시간 자체가 그 안에 여러 가지 성질을 포함하기 때문에 각각의 시점들이 본질적으로서로 다른 성질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을 시간에 대한 적재적 관점이라 부를 수 있다." 시간의 적재성과 공백성은 공간의 적재성과 공백성에 연결되는 개념이다. ... 인류의 역사에서 공백적 관점이 나오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서양 근대과학과 더불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어떤 문명이던지 그 이전에는 적재적 관점으로 시간을 이해했다.
# 공백적 시간개념은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시 · 분 · 초를 말할 때만 사용될 뿐, 연 · 월 · 일이라는 큰 단위의 시간은 모두 적재적 관점을 사용하는 것이다. 즉 2006년은 어느 한 시점이 아니라 365일이라는 날짜를 가진 '시기'이고, 매년 1월은 31일을 가진 '시기'이며, 매월 1일은 24시간을 가진 '시기'이다. 따라서 우리의 시관관념은 언제든지 '물건'이 실릴 수 있는 트럭인 셈이다. ... 분기개념과 시점개념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영[0]'이라는 숫자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서양신 시간의 시 · 분 · 초에는 0이라는 숫자가 사용된다. 즉 0시 · 0분 · 0초가 있다. 그러나 연 · 월 · 일에는 0이라는 숫자가 없다. 즉 0년 · 0월 · 0일은 없다. 연 · 월 · 일은 시점개념이 아니라 분기개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점개념이 없는 동양의시간에는 0시 · 0분 · 0각(초)이 없다.